21세기 천일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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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팔레르모 대성당의 코란
글 : 이희수
2019.04.22

*팔레르모 대성당

사진 : 연합뉴스

 

봄이 되면 시칠리아 섬 전체가 꽃향기로 그득하다.

레몬·오렌지·피스타치오·아몬드가 일제히 꽃의 향연을 펼친다.

모두 북아프리카 알바지역에서 지중해를 건너온 작물들이다. 날씨는 화창한데 자동차마다

하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밤새 사하라에서 날아온 '함신'이라는 사막 먼지 때문이다.

문화나 거리상으로도 시칠리아는 로마보다 튀니지에 더 가깝다. 다양한 문화가 자유롭게

섞이고 무질서한 카오스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독특한 친숙함이 있다.

시칠리아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 중심에는 대성당이 자리한다. 놀랍게도 실내 기둥에는 코란 구절

들이 새겨져 있다. 상식 밖이고 보기 드문 광경이다. 본래 팔레르므 대성당 자리에는

모스크가 있었다. 234년간(827~1061)이나 아랍이 지배하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1072년에는

아랍 왕조를 멸하고 노르만 왕조가 시칠리아에 들어섰다. 로저 2세 때 번영시대를 열었는데

그 바탕에는 역시 당시로써는 유례를 찾기 힘든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가 살아있었다.

노르만 왕조는 비단 생산기술을 혁신하여 경제적 풍요를 누렸고, 멀리 나폴리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리스어·라틴어·아랍어를 공용으로 하는 문화적 수용은 물론 아랍왕조의 이교도

두뇌들을 차별 없이 영입했다. 아랍 지리학자 알이드리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을 위해 당시 가장 정교한 세계지도를 제작해 바쳤다. 놀랍게도 그 지도에는 신라가

6개의 섬으로 또렷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아마 코리아를 묘사한 최초의 지도일 것이다.

그는 또한 신라의 황금 문화를 자세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4년에 완공되었지만, 시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양식들이 절묘한

대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서에 고딕 첨탑이 서 있고, 중앙에는 바로크 스타일의 녹색

돔이 성당의 위엄과 우아함을 돋보이게 해준다. 건물 전면의 전체적인 구조는 노르만 시대의

흔적이 강하고, 정교하게 홈을 파서 조각하듯이 올린 아치를 비롯한 세부적인 장식에서는

아랍풍을 따랐다. 남쪽 면의 벽시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정교한 부조와 1426년에 제작된

마돈나의 황금 모자이크 상, 18세기 신고전주의풍으로 꾸며진 성당 내부 장식에 이르기까지

흡사 건축 박물관에 온 느낌이다. 유려한 아라베스크 문양 사이의 기둥에 새겨진 코란 구절을

가리키며 "왜 신성한 성당에 이교도의 성서 흔적을 치우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안내를 맡은 수녀님의 대답은 "그 의미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펼치려는 내용이라니,

아랍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다. 사실 이 대답 하나만으로도

팔레르모 여행은 이미 충족된 셈이다.

 

*팔레르모 대성당 내부 / 출처 : 올댓시칠리아

 

노르만 왕국의 문화 융합정책으로 팔레르모는 어디를 가도 공존의 빛이 흐른다.

내게는 친숙한 아랍의 어느 골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2층 발코니를 도로 쪽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이웃과 빨래를 공유하는 아랍식 목조 건물이 펼쳐져 있고, 하얀 아라베스크 문양의

철제 창살이 이색적이다. 건물 하나하나는 제각각이지만 시대정신을 차곡차곡 담고 있다는

특성이 돋보인다. 노르만 시대 예술의 진수라는 로저 2세 왕궁이었던 산 조반니 델리 에레

미티 수도원, 몬레알레 수도원, 벨리니 광장의 산 카탈로교회 모두 아랍시대 건축물을 개조한

융합건물이다. 무엇보다 로저 2세 집무실 2층의 모자이크가 압권이다. 천정과 벽면 기둥에

까지 표범·사자·공작·사슴과 나무들을 이용해서 사냥 장면을 묘사했고, 신화 속의 상상화가

한데 어우러져 모자이크라는 생각보다는 눈에 익은 한 폭의 페르시아 세밀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문화 다양성이 주는 예술의 걸작은 국립미술관에 있는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1476년 작품

'성모의 수태고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서양의 얼굴에 동양의 겸양, 이슬람 풍 푸른 차도르를

쓰고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성모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기 힘든 감동이다.

팔레르모 문화라는 새로운 공존의 실험은 13세기 전반에 시칠리아의 국왕이 된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 이후 관용의 문이 닫히면서 쇠락했다. 인류가 되새겨야 할 뼈아픈

공존의 가르침이다.

 

출처 : 중앙일보(2019.4.11)

 

 

 글 : 이희수

 -한양대 특훈교수